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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사회 · 2026-10-23 · 허구적 사고실험·인과 검토

AI 시대의 계급 서사: 자동화된 집과 들어갈 수 없는 삶

자동화된 주택과 서비스 노동의 입구, 지하의 기술자와 보안 봉쇄를 허구적 사고실험으로 읽고, 계급 서사의 조건과 인과적 공백을 검토한다.

이 글의 목차 · 9개 절
  1. 2039년 서울: 가족 모두에게서 사라지는 일
  2. 박씨 가족의 부: AI를 쓰는 사람과 자산을 가진 사람
  3. 인간 교사라는 입구와 인간 프리미엄의 한계
  4. 가족의 진입: 자동화의 주변에 남는 역할
  5. 자동화된 집의 안락함과 소속의 부재
  6. 지하의 전직 엔지니어: 기술 능력은 소속을 보장하지 않는다
  7. 생일 파티: 감각의 풍요와 보안의 봉쇄
  8. 결말의 비대칭: 이사할 수 있는 사람과 머물 곳이 없는 사람
  9. 계급을 설명하는 장면과 대사의 조건

AI가 인간의 노동 대부분을 수행하는 사회를 소설이나 영화로 구성하려면, 단순히 일자리가 사라진 풍경을 보여 주는 데서 더 나아가야 한다. 누가 자동화의 결과를 소유하고, 누가 그것을 구매하며, 누가 그 세계의 출입 조건을 정하는지가 인물의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기생충』의 계급 구도를 AI가 보편화된 가상의 세계에 옮기는 사고실험은 이 문제를 한 집의 안과 밖으로 압축한다.

이 글에서 다루는 2039년 서울과 인물들의 직업·생활·서비스는 모두 허구적 설정이다. 실제 작품의 공식 후속 이야기나 미래 예측이 아니며, 특정 감독의 문체를 재현하는 시나리오도 아니다. 핵심은 AI라는 장치를 추가했을 때 기존 계급 서사의 인과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어떤 설정이 설명 없이 성립하지 않는지를 검토하는 데 있다.

2039년 서울: 가족 모두에게서 사라지는 일

가상의 김씨 가족에게 실직은 한 사람의 실패가 아니다. 기우가 하던 데이터 라벨링은 AI를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했던 인간의 판단 노동이었지만, 그 노동마저 자동화되는 상황을 맞는다. 기술 변화에 참여한 경험이 기술의 수익에 대한 권리를 주지는 않는다. AI를 위해 일했다는 사실과 AI 자산을 소유한다는 사실 사이에는 큰 간격이 남는다.

아버지 기택은 배송 노동을 잃고, 어머니는 돌봄 일에서 밀려나며, 딸 기정은 이미지·영상 프리랜서 일감이 줄어든다. 네 사람의 직업은 신체 이동, 돌봄과 관계, 시각적 표현, 데이터 처리로 서로 다르다. 이 구성이 중요한 이유는 한 직종에서 다른 직종으로 옮기면 된다는 해법을 쉽게 사용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재교육을 받는 동안 다른 가족이 버텨 주는 구조도 가족 전체의 소득이 동시에 흔들리면 약해진다.

다만 이것은 2039년에 실제로 그 직업들이 소멸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여러 종류의 노동이 동시에 대체된다는 가정을 통해, 노동을 제공할 수 있어야만 생활에 필요한 몫을 받는 제도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서사적 출발점이다. 직업별 자동화와 전환의 경제적 조건은 AI 시대의 경제 전환에서 따로 다룬다.

박씨 가족의 부: AI를 쓰는 사람과 자산을 가진 사람

박 사장은 창업한 회사를 매각해 큰 부를 확보한 인물로 설정된다. 그가 매일 자신의 노동을 팔지 않아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유능한 AI 사용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회사의 매각을 통해 자산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선택지를 떠받친다. 연교는 그 자산으로 생활을 조직하며, 집안의 여러 일과 자녀의 교육·정서적 서비스를 AI에 맡긴다.

여기서 박씨 가족을 단순히 AI를 잘 다루는 계층으로 묘사하면 계급 문제의 초점이 흐려진다. 김씨 가족도 AI를 사용할 줄 알 수 있다. 기우의 데이터 라벨링 경험과 기정의 이미지·영상 작업은 오히려 기술과 가까운 이력이다. 차이는 사용 능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서비스 이용료를 지불하고, 집을 보유하고, 노동소득이 끊겨도 기다릴 수 있는 자산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회사를 매각했다는 설정 또한 현재의 모든 AI 생산수단을 박 사장이 직접 소유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미 실현한 자산의 부와 AI 기업의 현재 소유권은 구별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는 자동화의 편익을 안정적으로 구매할 수 있고, 김씨 가족은 그 편익을 제공하는 생산에 기여했어도 생활의 기반을 확보하지 못한다. 소비자로서 잠시 이용하는 것, 노동자로서 접근하는 것, 자산을 통해 계속 누리는 것은 서로 다른 지위다. 이 구별은 AI 자본과 노동의 분배 문제와 연결된다.

인간 교사라는 입구와 인간 프리미엄의 한계

박씨 집에 기우가 들어갈 수 있는 첫 통로는 인간 교사에 대한 수요다. 자녀에게 AI 튜터와 정서적 서비스를 이미 제공하면서도, 부모는 별도로 인간 교사를 원할 수 있다. 가령 아이가 하루 일곱 시간을 AI와 함께 보낸다는 설정은 학습과 정서적 교류가 생활 깊숙이 자동화된 정도를 보여 준다. 이 일곱 시간은 허구적 장면을 위한 수치이며, 실제 아동의 이용 행태나 바람직한 교육 시간을 뜻하지 않는다.

기우에게 요구되는 것은 교과 지식만이 아니다. 기우는 AI로 만든 위조 포트폴리오를 내세우고, 집의 평가 시스템은 그와 교류할 때 예상되는 만족도를 고용 판단의 근거로 제공한다. 이 설정은 제출 자료의 진실성과 알고리즘의 호의적인 예측이 서로 다른 판단임을 드러낸다. 인간을 원한다는 요구조차 기술 체계 바깥의 순수한 인간성을 찾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은 여전히 선발되어야 하지만, 이 채용 장면에서는 지원자의 이력을 확인하는 과정과 시스템이 예측한 만족도를 받아들이는 과정 사이에 간격이 남는다. 인간 교사의 필요성과 AI 평가의 권위가 한 채용 과정 안에 공존한다.

이 입구는 서사의 중요한 모순을 드러낸다. AI가 모든 서비스 노동을 완전히 대체했다면 김씨 가족이 박씨 집에 고용될 이유도 사라진다. 원래의 계급 구도를 유지하려고 인간 고용을 그대로 남겨 두면서, 동시에 인간 노동이 전혀 필요 없는 세계라고 선언할 수는 없다. 인간 교사가 남아 있는 이유를 보여 주거나, 완전 대체라는 전제를 좁혀야 한다.

인간 프리미엄은 그 간격을 설명할 수 있는 제한된 조건이다. 일부 부유층은 인간이 직접 가르치거나 살펴 준다는 이유로 추가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선호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대규모 실직자를 흡수할 고용시장이 생긴다는 주장은 다르다. 소수의 가정이 소수의 인간 서비스를 구매하는 틈새는 가족 한 명의 진입을 가능하게 할 수 있어도, 노동을 잃은 다수의 소득을 회복시키는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가족의 진입: 자동화의 주변에 남는 역할

기우가 인간 교사로 들어간 뒤 가족에게 주어지는 역할도 자동화 이전의 직업을 그대로 되살리는 방식이어서는 설득력이 약하다. 기정은 이미지 큐레이터로, 어머니는 집의 인터페이스를 다루는 사람으로, 기택은 정원 로봇을 점검하는 사람으로 들어간다는 설정이 가능하다. 사람은 이미지나 정원을 전부 직접 만드는 대신, 자동화된 결과를 고르고 확인하며 집주인과 시스템 사이를 매개하는 위치에 놓인다.

이 역할들은 AI가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을 AI가 하는 집에서 인간에게 남는 몫이 무엇인지 묻는다. 기정이 직접 이미지를 생산하던 프리랜서에서 생성된 이미지를 선별하는 사람으로 이동한다면, 같은 시각적 감각도 다른 계약과 권한 아래 놓인다. 어머니의 돌봄 경험과 기택의 현장 경험 역시 자동화된 집을 운영하는 주변 업무로 옮겨 간다.

하지만 이 설명에도 한계가 있다. 이미지 선택, 인터페이스 조작, 로봇 점검마저 AI가 모두 더 잘하고 값싸게 수행한다는 전제를 채택한다면, 이 일자리들도 다시 사라진다. 따라서 가족의 고용은 남아 있는 기술적 필요, 인간이 관여하기를 바라는 집주인의 선호 등 어떤 조건에 기대는지 밝혀야 한다. 그 조건을 보여 주지 않으면 가족이 집 안으로 들어가는 사건은 세계의 경제 논리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 줄거리를 움직이기 위해 마련한 예외가 된다.

이때 임시로 얻은 일자리는 집의 운영에 관여할 권한일 뿐이다. 고용된 가족이 서비스의 설정을 만질 수 있다고 해서 계약을 정하거나, 집을 소유하거나, 계속 머물 권리를 얻는 것은 아니다. 자동화의 주변 노동은 부유층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하면서도 그 생활을 유지하는 기반에서는 가족을 떼어 놓는다.

자동화된 집의 안락함과 소속의 부재

박씨 집에서는 조명, 와인, 실내 온도, 정원, 보안이 자동으로 관리된다. 서비스의 개별 기능은 편리하지만, 그것들이 함께 작동하면 집 전체가 주인의 필요를 미리 처리하는 환경이 된다. 노동은 눈앞에서 사라지고 결과만 매끄럽게 나타난다. 아이의 그림마저 AI가 생성한 것이라는 장면은 이 환경이 집안일을 넘어 창작과 가족의 감상에까지 닿았음을 보여 준다.

그림의 문제는 AI가 만든 이미지에 아무 가치가 없다는 데 있지 않다. 그 그림을 두고 가족이 무엇을 아이의 표현으로 받아들이는지, 생성된 결과와 아이의 행위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취급하는지가 문제다. 집의 편안함도 마찬가지다. 편의를 누리는 경험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자산·권한을 이해하는 경험은 자동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방문 전에 집이 거주자에게 맞는 기분과 분위기를 미리 선택하는 장면에서는, 어머니조차 그 설정을 아이가 지정했는지 남편이 정했는지 모른다. 편안한 환경이 주어져도 누가 그것을 결정했는지는 흐려진다. 집의 음성 안내는 온도를 사람이 견딜 수 있는 범위로 설명하지만, 방문한 노동자는 그 표현과 자신의 체감 사이의 차이를 알아차린다. 사람에게 맞는 환경이라는 설명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경험을 보장하지는 않는 것이다.

아이에게 AI의 그림은 속상할 때 기분을 달래 주는 결과물이다. 이를 접한 방문자는 감정을 견디기 위해 직접 그림을 그리는 활동과, 자신을 진정시킬 이미지를 받아 보는 일이 다르다는 점을 드러낸다. 두 경우 모두 위로를 줄 수 있지만, 감정을 통과하는 행위와 감정에 대응하는 산출물을 받는 경험은 같지 않다. 따라서 그림이 무엇을 닮았는지만으로는 이 장면의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빈집에서 편안함을 누리는 네 가족은 집이 자신들을 가족으로 알아보는지, 그저 네 사람의 몸을 무사하고 쾌적하게 유지하는지 의문을 품는다. 집이 가족의 기분에 맞춘 음악을 자동으로 틀어 주는 장면은 이 질문을 구체화한다. 함께 살아온 관계가 음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네 사람의 상태를 각각 관리하는 일이 가족의 분위기를 대신한다면, 가족이라는 관계와 관리되는 네 개인의 합 사이의 차이가 남는다.

김씨 가족이 잠시 그 집의 편안함을 누리는 장면은 그래서 단순한 사치의 체험 이상이 된다. 같은 조명 아래 앉고 같은 온도를 느끼며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순간에는 생활의 표면이 같아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집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은 것이 아니다. 잠시 그 안에 있다는 사실은 그곳에 계속 있을 권리, 서비스의 계약 주체가 될 지위, 문제가 생겼을 때 보호받을 자격을 주지 않는다.

계급의 경계는 고급 물건을 만질 수 있는지에만 있지 않다. 편안함이 중단되었을 때 어디로 갈 수 있는지, 시스템이 자신을 누구로 인식하는지, 다른 사람의 허락 없이 머물 수 있는지가 경계를 만든다. 가족의 짧은 안락함은 이 차이를 없애기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지하의 전직 엔지니어: 기술 능력은 소속을 보장하지 않는다

집의 지하에는 문광의 남편인 전직 엔지니어가 회사 매각 이후 밀려나 숨어 있다는 설정이 놓인다. 그는 AI를 이해하지 못해 뒤처진 인물이라는 단순한 설명을 방해한다. 기술을 만들고 운용할 능력이 있더라도, 그 기술의 소유와 수익 배분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 회사의 매각은 누군가에게는 부를 확정하는 사건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기 역할을 잃는 사건이 될 수 있다.

그가 AI 체계에서 배제 대상으로 지정되었다는 설정은 더욱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AI가 한 사람을 배제했다고만 말하면 제도적 사건이 마법 같은 기계의 의지로 바뀐다. 누가 배제 기준을 정했는지, 어떤 기관이나 서비스가 그 판단을 채택했는지, 그 지정이 실제 생활의 어떤 권리를 제한하는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가 필요하다.

이 사고실험에는 그 법적·제도적 인과관계가 충분히 제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배제 지정은 허구적 설정으로 보존하되, 특정한 법률이나 현실의 제도가 이미 그런 권한을 AI에 주었다는 사실처럼 서술해서는 안 된다. 기술 체계의 평가가 생활의 접근권을 빼앗는 결과로 이어지려면, 그 평가를 집행하는 인간의 제도와 계약이 연결되어야 한다. 전직 엔지니어가 자신을 처리되지 않은 버그에 빗대는 대목은 이 배제를 기술자의 언어로 표현한다. 이는 사람을 실제 소프트웨어 오류로 분류했다는 사실이나 시스템에 확립된 의도가 있다는 설명이 아니라, 자신을 다룰 자리를 찾지 못한 인물의 비유다. 보안이 소유자를 보호하면서 그 보호의 위험을 누가 떠안는지는 보이지 않게 하는 구도도 같은 질문을 남긴다. 자동화된 판단 뒤에는 설계하고 채택하고 집행하는 사람이 있으며, 위험의 배분과 보호의 범위에 관한 책임을 기계에 넘겼다는 말로 지울 수 없다.

지하의 인물은 집 밖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가족과 또 다른 형태의 배제를 보여 준다. 한쪽은 고용이라는 좁은 통로를 통해 집 안으로 들어오고, 다른 쪽은 정식 구성원이 되지 못한 채 집의 아래에 머문다. 양쪽 모두 집의 풍요 가까이에 있지만, 그 풍요를 자신의 안정된 생활로 바꾸는 지위를 갖지 못한다.

생일 파티: 감각의 풍요와 보안의 봉쇄

아이의 생일 파티에는 AI가 조성하는 풍경, 드론 사진, 불꽃놀이, 향기가 결합한다. 집은 더 편리하게 운영되는 데 그치지 않고, 손님이 무엇을 보고 어떤 분위기를 느낄지까지 조직하는 환경이 된다. 시각적 배경과 기념사진, 빛과 냄새가 한 행사에 맞추어 배치되는 장면은 부유함을 물건의 양보다 경험을 통제하는 능력으로 보여 준다.

그와 동시에 보안 시스템의 봉쇄가 작동하면 같은 자동화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주인을 위해 환경을 조정하던 체계가 누군가의 이동과 출입을 막는 장치가 된다. 편의를 제공하는 기능과 경계를 집행하는 기능이 같은 집에 함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집이 누구에게 매끄럽게 반응하고 누구에게 장벽이 되는지가 인물의 지위를 드러낸다.

다만 보안 봉쇄가 극적 전환을 만들려면 실제 작동의 인과관계가 필요하다. 무엇이 봉쇄를 촉발했는지, 누가 해제할 권한을 가졌는지, 집 안의 사람들에게 어떤 행동이 가능했는지가 불분명하면 기계의 갑작스러운 오작동이 모든 사건을 대신 설명하게 된다. 혼란 속에서 인간이 서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믿음과 AI에게 보호를 위임하면 된다는 믿음이 충돌할 수 있다. 이 대립도 어느 쪽의 구호가 옳은지 선언하기보다 누가 실제 위험을 감수하고 누구의 명령이 실행되는지로 드러나야 한다. 기술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과시하는 것만으로는 갈등이 완성되지 않는다. 인물들이 그 권한 구조 안에서 무엇을 선택했고 무엇을 선택할 수 없었는지가 보여야 한다.

결말의 비대칭: 이사할 수 있는 사람과 머물 곳이 없는 사람

이 구도에서 결말의 차이는 동일한 사건 이후의 선택지에 있다. 박씨 가족은 다른 AI 스마트홈으로 이사한다. 김씨 가족은 법적 문제가 없다는 처리 아래 풀려나지만, 일자리와 계층 상승의 가능성을 되찾지 못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문광의 남편은 지하에서 자동 영양제를 먹는 상태에 남고, 끝내 조용히 사라지는 인물로 처리된다. 이 마지막 사라짐의 구체적인 경위는 충분히 설명되어 있지 않다. 한쪽은 장소를 바꾸어 같은 생활을 이어 갈 수 있고, 다른 쪽은 노동의 통로를 잃으며, 또 다른 쪽은 생존을 유지하면서도 사회의 시야 밖에 남는다.

김씨 가족에게 법적 문제가 없다는 판단과 석방은 실제 법률에 따른 결론이 아니라, 법적 근거와 절차가 생략된 허구의 가정이다. 이 처리를 현실의 책임이나 법 집행에 대한 설명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계층 상승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결말은 이 서사가 선택한 닫힌 구조이지 AI 보급이 반드시 낳을 미래라는 주장이 아니다. 다만 그 가정 안에서는 고용의 상실이 생활 기반의 상실로 이어진다. 다시 일하면 된다는 말도 새로 들어갈 노동시장이 충분히 남아 있을 때에만 실질적인 선택지가 된다.

최소 생존이 보장되는 결말을 상정하더라도 계급 문제가 자동으로 해소되지는 않는다. 굶지 않을 수 있다는 조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는 조건,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으로 대우받는다는 조건,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다는 조건은 서로 다르다. AI가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제공하는 설정은 첫 번째 문제의 일부를 바꿀 수 있지만 나머지를 설명 없이 해결하지는 못한다.

이 비대칭을 인간의 경제적 가치가 곧 인간의 존엄이라는 결론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 노동시장에서 높은 가격을 받지 못하거나 생산에 꼭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은 사람의 가치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생산에 대한 필요가 줄어들어도 존엄과 생활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가 문제다. 서사가 드러내는 공포는 무능한 개인이 도태된다는 데 있기보다, 삶을 지탱하던 인정과 분배의 통로가 동시에 좁아지는 데 있다.

계급을 설명하는 장면과 대사의 조건

이 사고실험을 설득력 있는 서사로 만들려면 등장인물이 경제 이론을 대신 낭독하게 할 필요는 없다. AI 이용을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적 말투, 고용 조건을 확인하는 태도, 집의 서비스를 만지는 방식, 보안 권한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행동 차이가 계급 구조를 구체화할 수 있다. 일상의 대화와 사소한 동작을 통해 큰 구조를 보이게 하는 것은 일반적인 서사 구성의 문제다.

핵심은 장면과 설명이 서로를 지탱하게 하는 데 있다. 자녀에게 이미 AI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인간 교사를 고용한다면 그 선호가 행동에서 드러나야 한다. 인간이 필요 없다는 세계에서 가족을 고용하려면 그 예외의 조건이 보여야 한다. 지하의 엔지니어가 배제되었다면 평가에서 권리 제한으로 이어지는 제도적 고리가 필요하다. 보안이 파티를 봉쇄한다면 감각적 풍요와 접근 통제가 같은 소유 구조에 속한다는 점이 인물의 선택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렇게 읽을 때 AI는 기존 이야기의 직업과 소품을 미래형으로 바꾸는 장식이 아니다. 가족이 부잣집에 들어갈 수 있었던 노동의 통로 자체를 약화시키고, 들어간 뒤에도 이용과 소유, 체험과 소속의 차이를 남기는 조건이다. 다만 그 조건은 가능한 허구적 구성 중 하나다. 완전 자동화, 인간 프리미엄, 자산 집중, 배제 제도, 최소 생존 보장을 한 세계에 배치하려면 각각의 전제와 연결을 검토해야 하며, 이 조합을 필연적인 미래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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