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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2026-10-25 · 제작진 인터뷰·영화 장면의 대화 내 확인 자료 총합 · 세부 인용과 제작 경위 재검증 필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두 죽음: 나타샤의 희생과 토니 스타크의 장례식

보르미르에서 나타샤가 죽게 된 각본·재촬영 과정과 가족·자기결정의 서사 논리, 토니에게만 거대한 장례식이 집중된 이유와 2019~2021년 제작진의 서로 다른 해명을 함께 분석한다.

이 글의 목차 · 16개 절
  1. 보르미르의 죽음은 처음부터 나타샤로 고정되지 않았다
  2. 나타샤에게 부여된 완결: 가족과 선택권
  3. 클린트를 살린 논리: 돌아가야 할 가족
  4. 보르미르 장면 자체도 다시 찍었다
  5. 배우를 내보내기 위해 죽였다는 설명과는 거리가 있다
  6. 문제는 장례식에서 다시 생긴다
  7. 제작진의 설명은 하나가 아니었다
  8. 개봉 직후: “이미 호숫가에서 애도했다”
  9. 각본가 마커스: “토니는 공적인 인물, 나타샤는 비밀 속 인물”
  10. 2019년 여름: “나타샤에게는 다음 영화가 있지만 토니에게는 없다”
  11. 2021년: “나타샤는 공개적인 장례식을 싫어했을 것이다”
  12. 토니의 장례식은 한 사람의 장례식 이상이었다
  13. 제작진 설명이 충돌하는 지점
  14. 《블랙 위도우》의 묘지는 사후 보완이면서 성격의 재정의다
  15. 플롯을 완성하는 죽음과 프랜차이즈를 완성하는 죽음
  16. 제작진 발언을 확인하는 데 사용된 공개 인터뷰

《어벤져스: 엔드게임》에는 원년 어벤져스 두 사람의 죽음이 있다. 나타샤 로마노프는 보르미르에서 소울 스톤을 얻기 위해 죽고, 토니 스타크는 마지막 전투에서 인피니티 스톤을 사용한 뒤 죽는다. 두 희생은 모두 타노스를 되돌리고 물리치는 데 필수적이지만, 영화가 두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은 현저히 다르다. 나타샤에게는 임무 직후 동료들의 짧은 애도가 주어지는 반면, 토니에게는 작별 장면, 홀로그램 유언, 호숫가 장례식, 여러 세대의 MCU 인물이 한자리에 모이는 종결 의식이 이어진다.

이 비대칭은 우연한 편집 결과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제작진의 인터뷰를 따라가면 세 층위가 겹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보르미르에서 누가 죽을지는 실제로 여러 버전을 거쳤다. 둘째, 각본가들은 나타샤의 죽음을 ‘가족과 선택권을 얻은 사람의 자기희생’으로 설계했다. 셋째, 완성된 영화는 그 희생을 토니의 죽음과 같은 규모로 의례화하지 않았고, 개봉 뒤 제작진은 그 이유를 서로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설명했다.

보르미르의 죽음은 처음부터 나타샤로 고정되지 않았다

보르미르 장면의 초기 구상에는 클린트 바턴이 죽는 버전이 있었다. 각본가 스티븐 맥필리의 회고에 따르면 한 단계에서는 호크아이가 소울 스톤을 위해 희생하는 전개가 실제로 존재했다. 그러나 VFX 프로듀서 젠 언더달을 비롯한 제작진 일부가 이에 강하게 반대했다. 요지는 나타샤에게 그 선택을 빼앗지 말라는 것이었다. 여성 스태프들 가운데서도 같은 반응이 나왔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 일화는 최종 결정의 성격을 보여준다. 나타샤의 죽음은 단순히 ‘여성 캐릭터를 제거하는 편의적 선택’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제작진 일부는 클린트가 대신 죽어 나타샤를 살리는 결말보다, 나타샤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죽는지 알고 스스로 선택하는 결말이 더 강한 영웅적 행위라고 보았다. 문제는 그 의도가 완성된 영화의 전체 감정 배분에서도 같은 무게로 유지되었느냐는 데 있다.

나타샤에게 부여된 완결: 가족과 선택권

각본가들과 루소 형제가 반복해서 설명한 나타샤의 중심 주제는 ‘가족’이었다. 레드룸에서 만들어진 암살자였던 나타샤에게 생물학적 가족이나 안정된 소속은 거의 없었고, 어벤져스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상의 가족이 되었다. 《엔드게임》의 5년 공백기에는 다른 영웅들이 흩어지거나 무너지는 동안 나타샤가 어벤져스 조직을 계속 붙들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그녀는 잃어버린 세계를 되돌리려는 조직의 마지막 관리자로 남는다.

이 틀에서 보르미르의 죽음은 ‘가족이 없는 사람이 죽는다’가 아니라 ‘마침내 가족을 얻은 사람이 그 가족을 되찾기 위해 죽는다’는 완결로 설계되었다. 스칼렛 요한슨 역시 나타샤를 자기 삶의 중요한 선택을 타인이 대신 내려온 인물로 해석해 왔고, 보르미르에서의 선택은 그 역사를 뒤집는 순간으로 읽혔다. 어린 시절과 레드룸에서는 타인의 명령으로 움직였지만, 마지막에는 누구도 대신 결정할 수 없는 선택을 자신이 내린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나타샤의 죽음이 왜 ‘구출 실패’가 아니라 ‘행위’로 연출되었는지를 설명한다. 클린트와 나타샤는 서로 상대를 살리기 위해 싸우고, 최종적으로 나타샤가 그 경쟁에서 이긴다. 죽음이 그녀에게 가해지는 사건이 아니라 그녀가 획득한 선택으로 보이도록 만든 구조다.

클린트를 살린 논리: 돌아가야 할 가족

반대편에는 클린트의 서사가 있다. 영화는 클린트가 가족을 잃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그 상실이 로닌으로서의 폭력으로 이어진다. 나타샤가 그를 다시 찾아내 어벤져스의 시간여행 작전에 복귀시키며, 클린트의 목표는 끝까지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각본가들은 클린트가 보르미르에서 죽을 경우 이 서사가 ‘가족을 잃고 타락한 뒤 가족을 되찾지도 못한 채 죽는 이야기’가 된다고 보았다. 나타샤의 희생은 따라서 두 사람의 결말을 대칭적으로 정리한다. 클린트는 자신이 잃었던 가족에게 돌아가고, 나타샤는 자신이 얻은 가족 전체가 돌아갈 수 있도록 자신을 내놓는다.

그러나 이 대칭은 동시에 비판의 근거도 된다. 배우자와 자녀가 있는 남자는 살아 돌아가고, 독신으로 묘사된 여성은 공동체를 위해 죽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이 문제를 의식했다. 맥필리는 MCU의 첫 여성 어벤져스를 죽이는 선택이 논란을 부를 것임을 알고 있었고, 특히 나타샤가 죽은 뒤 영화가 충분한 애도 시간을 주지 못한다는 점을 걱정했다고 밝혔다.

보르미르 장면 자체도 다시 찍었다

최종판의 보르미르는 거의 두 사람만의 장면이다. 그러나 먼저 촬영된 버전은 더 큰 액션 시퀀스였다. 타노스 측 병력이 개입하고, 클린트와 나타샤가 전투를 벌이는 와중에 희생이 일어나는 구조였다. 테스트 반응이 반드시 실패한 것은 아니었지만, 편집 과정에서 제작진은 이 버전이 나타샤의 선택보다 외부 액션에 시선을 빼앗는다고 판단했다.

재촬영에서는 적군과 대규모 전투가 제거되고 두 사람의 선택 경쟁만 남았다. 편집진의 설명대로라면 변경의 목적은 장면이 나타샤에게 더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제작 단계에서조차 ‘어떻게 죽느냐’의 의미가 중요하게 다뤄졌다는 점에서, 최종 죽음을 단순한 플롯 처리로만 보기는 어렵다.

배우를 내보내기 위해 죽였다는 설명과는 거리가 있다

나타샤의 죽음을 스칼렛 요한슨의 퇴장 요구나 계약 문제로 곧바로 연결할 공개 근거는 약하다. 《엔드게임》 개봉 전부터 《블랙 위도우》 단독 영화가 추진되고 있었고, 케이트 쇼트랜드의 감독 선임도 이미 알려져 있었다. 마블은 나타샤를 현재 시점에서 죽이는 동시에 과거를 다루는 별도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따라서 공개된 제작진 설명의 중심은 ‘배우를 정리하기 위해 캐릭터를 죽였다’가 아니라 ‘원년 어벤져스의 서사를 어떻게 끝낼 것인가’였다. 이 사실은 역설적으로 뒤의 장례식 논쟁과 연결된다. 제작진은 나타샤에게 이후 영화가 남아 있다는 점을, 왜 《엔드게임》에서 토니만큼 긴 종결 의식을 주지 않았는지 설명하는 근거로 나중에 사용했다.

문제는 장례식에서 다시 생긴다

보르미르에서 돌아온 뒤 살아남은 원년 어벤져스는 호숫가에 모여 나타샤를 애도한다. 클린트는 그녀를 되돌릴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브루스는 분노를 표출한다. 이 장면은 분명한 추모다. 다만 영화의 구조상 곧바로 인피니티 스톤과 타노스 문제로 이동하기 때문에, 나타샤의 죽음은 ‘작전 중 잃은 동료를 애도하는 순간’의 규모를 넘지 못한다.

토니의 죽음은 전혀 다르게 처리된다. 마지막 순간에는 피터 파커, 페퍼 포츠, 제임스 로즈 등이 차례로 작별하고, 이후 모건을 향한 홀로그램 메시지가 이어진다. 호숫가에는 MCU 여러 작품의 인물들이 세대별로 모이고, 초기 《아이언맨》을 상징하는 아크 리액터가 물 위로 보내진다. 해피와 모건의 대화까지 이어지면서 영화의 마지막 감정적 장은 사실상 토니에게 집중된다.

그래서 두 죽음의 기능에는 뚜렷한 차이가 생긴다. 나타샤의 죽음은 소울 스톤을 얻어 시간여행 작전을 완성하는 데 필요하고, 토니의 죽음은 타노스를 끝내면서 동시에 2008년 《아이언맨》에서 시작된 MCU 첫 시대를 닫는 데 사용된다. 하나는 플롯을 완성하는 희생이고, 다른 하나는 프랜차이즈의 한 시대를 완성하는 희생으로 연출된다.

제작진의 설명은 하나가 아니었다

개봉 직후: “이미 호숫가에서 애도했다”

2019년 개봉 직후 조 루소는 왜 블랙 위도우에게 장례식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자, 영웅들이 과거에서 돌아온 뒤 그녀를 애도하는 호숫가 장면을 상기시켰다. 장례식이 화면 밖에서 있었을 수도 있고 이후 작품에서 다뤄질 수도 있다는 취지의 설명도 했다.

이 단계의 답변은 ‘나타샤는 원래 장례식을 싫어한다’는 성격론보다 단순했다. 영화 안에 이미 추모 장면이 있으며, 모든 의식을 화면에 넣을 필요는 없었다는 논리였다.

각본가 마커스: “토니는 공적인 인물, 나타샤는 비밀 속 인물”

크리스토퍼 마커스는 보다 캐릭터 중심의 설명을 내놓았다. 토니 스타크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거대한 공적 인물이지만, 나타샤 로마노프는 평생 정체와 활동을 숨겨온 스파이에 가까웠기 때문에 같은 규모의 장례식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시기 맥필리는 다른 약점을 인정했다. 나타샤가 이야기의 2막에서 죽기 때문에 영화가 그녀를 충분히 애도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제작진도 걱정했다는 것이다. 즉 ‘장례식을 생략한 것은 완전히 문제없는 선택이었다’기보다, 서사의 속도와 상징적 처리 사이에 긴장이 있음을 각본 단계에서도 알고 있었다.

2019년 여름: “나타샤에게는 다음 영화가 있지만 토니에게는 없다”

조 루소의 이후 설명은 훨씬 제작 실무에 가깝다. 나타샤에게는 《블랙 위도우》라는 다음 영화가 있지만 토니 스타크에게는 더 이상 영화가 없기 때문에, 제한된 상영시간 안에서 토니의 종결을 《엔드게임》이 책임져야 했다는 취지다.

이 답변은 앞의 ‘공적 인물과 비밀스러운 인물의 차이’와 성격이 다르다. 장례식의 차이를 영화 속 인물의 성격이 아니라 프랜차이즈 편성으로 설명한다. 나타샤의 애도와 후속 정리는 다음 영화가 일부 맡을 수 있지만, 토니에게는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판단이다.

2021년: “나타샤는 공개적인 장례식을 싫어했을 것이다”

《블랙 위도우》 감독 케이트 쇼트랜드는 팬들이 《엔드게임》에서 나타샤에게 장례식이 없었던 점에 불만을 가졌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후속 영화의 엔딩 크레딧 장면에서 옐레나 벨로바가 나타샤의 묘를 찾아가는 장면은 이 감정적 공백을 부분적으로 메운다.

쇼트랜드의 설명에 따르면 스칼렛 요한슨은 나타샤가 거대한 공개 장례식을 원하지 않았을 인물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영화는 군중이나 국가적 추도식 대신, 외딴 묘지와 한 사람의 사적인 애도를 택했다. 이때에야 ‘나타샤다운 장례란 무엇인가’라는 해명이 보다 구체적인 형태를 얻는다.

토니의 장례식은 한 사람의 장례식 이상이었다

토니의 장례식은 제작 현장에서도 특별한 시퀀스로 취급되었다.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촬영 현장에서는 이 장면을 ‘The Wedding’으로 부르기도 했고, 일부 배우들은 결혼식 장면을 찍는 것으로 알고 현장에 왔다. 여러 작품에 흩어져 있던 배우들을 실제 한 장소에 모으는 것 자체가 대규모 제작 이벤트였다.

따라서 완성된 장면이 ‘토니 스타크라는 개인의 사적인 장례’이면서 동시에 ‘MCU 1세대의 단체 커튼콜’처럼 보이는 것은 의도에 가깝다. 《아이언맨》에서 시작한 인물의 죽음에 거의 모든 주요 계보를 세워놓음으로써, 영화는 토니를 한 캐릭터 이상으로 사용한다. 그가 MCU 첫 시대의 시작점이었다면 장례식은 그 시대의 종결 표지가 된다.

이 선택은 토니 장례식의 크기를 설명하지만, 나타샤와의 불균형까지 자동으로 해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왜 나타샤가 같은 영화에서 죽었음에도 이 종결 의식의 일부로 거의 호명되지 않는지가 더 선명해진다.

제작진 설명이 충돌하는 지점

첫째, ‘토니는 공적 인물이고 나타샤는 사적인 인물’이라는 설명에는 한계가 있다. 영화에 나온 토니의 장례식 자체가 국가장이나 대중 추도식이 아니라 호숫가 집에서 친구와 가족, 동료들이 모인 사적인 의식이기 때문이다. 나타샤가 대중적 영웅으로 국장을 원하지 않았다는 설명은 가능하지만, 같은 동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녀를 함께 기리는 것까지 배제해야 할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둘째, ‘호숫가에서 이미 애도했다’는 설명은 장례식의 유무보다 영화가 배분한 감정의 규모라는 비판을 비껴간다. 나타샤에게 애도 장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토니에게는 죽음 직전의 작별, 유언, 집단 장례식, 상징물, 유족의 후일담까지 연쇄적으로 주어지는 데 비해 나타샤의 애도는 작전 재개 전에 압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셋째, ‘나타샤에게는 다음 영화가 있다’는 설명은 가장 솔직하지만 가장 메타적이다. 이것은 나타샤라는 사람이 왜 장례식을 받지 않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마블 스튜디오가 각 작품에 감정적 마무리를 어떻게 분배했는지를 설명한다. 관객이 《엔드게임》이라는 한 영화 안에서 느끼는 비대칭은 그대로 남는다.

넷째, 2021년의 ‘나타샤는 공개 장례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은 캐릭터와 잘 어울릴 수 있지만, 개봉 직후부터 일관되게 제시된 단일 창작 원칙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앞선 답변들이 호숫가 추모, 화면 밖 장례 가능성, 후속 영화의 존재를 각각 이유로 들었기 때문이다. 제작진의 설명은 하나의 원칙을 반복했다기보다 논란이 계속되는 동안 여러 층위의 이유를 차례로 제시한 모습에 가깝다.

《블랙 위도우》의 묘지는 사후 보완이면서 성격의 재정의다

《블랙 위도우》의 엔딩 크레딧 장면은 나타샤에게 뒤늦게 ‘묘지와 유족의 애도’를 부여한다. 그러나 토니의 장례식을 복제하지는 않는다. 옐레나 한 사람이 무덤을 찾아가며, 나타샤를 국가적 영웅이 아니라 한 가족이 잃은 사람으로 돌려놓는다.

이 장면은 《엔드게임》의 공백을 메우는 동시에 나타샤에게 맞는 애도의 형식을 다시 정의한다. 거대한 MCU 인물 행렬 대신 사적인 관계 하나를 전면에 내세운다. 다만 이 보완은 2년 뒤 별도 영화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엔드게임》 자체에서 두 원년 어벤져스의 희생이 불균형하게 기억된다는 비판을 없애지는 못한다.

플롯을 완성하는 죽음과 프랜차이즈를 완성하는 죽음

나타샤의 죽음에 관한 제작진의 의도는 비교적 정교했다. 처음부터 확정된 희생자가 아니었고, 클린트가 죽는 버전에서 방향을 바꾸었으며, 가족과 자기결정이라는 캐릭터의 핵심 주제를 완결하려 했다. 장면도 대규모 전투 버전에서 두 사람의 선택에 집중하는 버전으로 재촬영했다.

그런데 같은 영화가 그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은 다른 문제였다. 나타샤는 우주를 되돌리는 작전의 필수 희생자이지만, 영화의 마지막 의례는 토니 스타크와 MCU의 첫 시대를 위한 것으로 설계되었다. 이 때문에 제작진에게는 ‘완결된 캐릭터 아크’였던 것이 일부 관객에게는 ‘필요할 때 죽이고 충분히 애도하지 않은 캐릭터’처럼 보일 수 있었다.

두 평가를 동시에 놓아야 이 논쟁이 선명해진다. 나타샤의 죽음이 무심하게 결정되었다고 단정하면 실제 각본·재촬영 과정을 놓친다. 반대로 ‘주체적인 희생이므로 충분히 존중되었다’고 말하면 완성된 영화의 감정적 비대칭을 놓친다. 《엔드게임》은 나타샤에게 죽음의 선택권은 주었지만, 그 선택을 기억하는 마지막 의식의 중심은 토니에게 주었다.

제작진 발언을 확인하는 데 사용된 공개 인터뷰

아래 자료는 이 주제에서 확인된 제작진 발언과 제작 과정을 담은 기사들이다. 세부 인용과 맥락은 추후 원문 재검증이 필요하다.

자료·검토 표기: 내부 총합 · 대화에서 이미 확인된 제작진 인터뷰와 영화 장면 분석 · 이번 편집에서 외부 추가 조사 없음